베트남에서 삼성은 단순한 외국 기업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삼성 스마트폰의 절반 가까이가 이 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삼성 한 회사가 베트남 전체 수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늘 뉴스거리가 되고 있고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삼성은 가장 들어가고 싶은 ‘꿈의 직장’이다. 어쩌다 한국 기업 하나가, 한 나라 안에서 이런 위상을 갖게 되었을까.
왜 베트남이었나
이야기의 출발점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2000년대 들어 ‘세계의 공장’ 중국의 임금이 빠르게 오르자, 삼성은 더 젊고 저렴한 노동력과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찾아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2009년 하노이 북쪽의 박닌 공장을 시작으로 타이응우옌까지, 삼성은 베트남을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키웠다. 여기까지는 흔한 ‘비용 절감’ 스토리다. 그러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그 다음부터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회사
베트남에서 삼성 직원이 받는 임금은 현지 기준으로 최상위권이다. 박닌 공장 노동자의 2025년 평균 실수령액은 월 1,680만 동 안팎으로 알려져 있고, 이는 그 지역 평균임금의 1.5배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여기에 13개월 치 급여, 최대 석 달 치에 이르는 성과급, 탄탄한 복지가 더해진다. 갓 임용된 현지 의사의 초봉을 두 배가량 웃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고용은 안정적이고, 회사는 좀처럼 사람을 내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삼성을 ‘신의 직장’이라 부르고,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는다. 가슴에 삼성 배지를 다는 것은, 베트남에서 일종의 사회적 자부심이다.
총리까지 나서는 나라
더 놀라운 것은 베트남 정부의 태도다. 베트남 총리는 삼성 경영진을 직접 만나 삼성을 “신뢰하는 파트너”라 부르고, 삼성의 성공과 베트남의 성공을 한 묶음으로 이야기한다. 한 외국 기업을 국가 정상이 이렇게까지 살뜰히 챙기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풍경이다. 베트남 정부는 첨단 투자를 위한 지원기금 신설을 검토하고, 더 깊은 협력을 거듭 요청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이 흔들리면 베트남의 수출과 경제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삼성의 성공이 곧 베트남의 성공’이라는 말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에 가깝다.
뉴스가 되지 않은, 진짜 기여
여기까지는 그래도 가끔 기사로 다뤄진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에 더 깊은 흔적을 남긴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베트남 경제의 체력’을 키운 일이다.
삼성은 단순히 공장을 돌린 것이 아니라, 베트남 현지 부품·협력사 생태계를 함께 길러냈다. 2014년 삼성과 거래하던 베트남 1차 협력사는 25곳에 불과했지만, 10년 만에 300곳을 넘어섰다. 무려 12배가 넘는 증가다. 삼성은 2015년부터 베트남 중소기업에 ‘스마트 공장’ 컨설팅과 생산 전문가 양성을 지원하며, 협력사를 한 곳 한 곳 발굴하고 품질을 끌어올렸다. 이런 변화는 공장 준공식처럼 화려하지 않다. 몇 년에 걸쳐 조용히 진행되기에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베트남 산업의 뿌리를 바꿔 놓은 것은, 바로 이런 더딘 일들이었다.
기술의 무게중심도 옮겨 왔다. 2022년 삼성은 하노이에 2억 2천만 달러를 들여 동남아 최대 규모의 R&D 센터를 세웠다. 2천 명이 넘는 베트남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이곳에서 스마트폰 소프트웨어와 차세대 기술을 연구한다. ‘값싼 조립 공장’에서 ‘연구개발 거점’으로 — 베트남의 위상이 그렇게 한 단계 올라섰다. 2025년에는 베트남에서 생산한 누적 휴대폰이 20억 대를 돌파했다. 통계 수치 뒤에 가려진 인력 양성과 기술 이전이야말로, 삼성이 베트남에 남긴 가장 묵직한 선물이다.
동행의 의미
1992년 수교 당시만 해도, 한국과 베트남이 이런 사이가 되리라 상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때 총을 서로 겨누었던 두 나라가, 이제는 한 한국기업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고 함께 걱정하는 관계가 되었다. 이미 한국은 베트남 관광 1위 국가이고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라 불리울 정도로 한국인에게 인기다. 베트남의 삼성은 단순한 투자 성공 사례가 아니라, 적에서 동반자로 이어진 한국과 베트남의 60년사의 이정표다. 그리고 쇄도하는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현재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