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0여 년 전, 한국과 베트남은 전장에서 총구를 마주 겨누는 사이였다. 그리고 2026년 오늘,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 되었다. 타기업들의 진출 쇄도로 지금은 비율이 다소 낮아 졌으나 삼성은 한때 베트남 수출의 25%를 책임졌었다. 2026년 1분기 기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1만개가 넘고 베트남 역사상 누적투자 1위 국가가 한국이다. 적에서 최고의 동반자로 — 이 극적인 60년을 한눈에 따라가 본다. (이 글은 w·pulse의 모든 이야기를 잇는 지도다.)
1961~1975 전쟁의 시대
모든 것은 1961년 11월, 박정희와 케네디의 백악관 회담에서 시작됐다. 그 자리에서 박정희가 꺼낸 파병 카드는 몇 년 뒤 현실이 되어, 누적 32만 여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으로 향했다. 파병 한국군이 맞선 것은 ‘레드 나폴레옹’ 보응우옌잡이 맨손으로 키워낸 군대였다. 결국 1973년 미국은 남 베트남에서 전격 철수하였고, 북 베트남은 1975년 4월 사이공을 함락하며 베트남 전쟁은 종료되었고 베트남은 다시 통일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통일된 베트남을 기다린 것은 영광이 아닌 폐허였다.
1975~1986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도이모이
전쟁이 끝난 지 약 10년, 베트남 경제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미국의 제재와 국제적 고립, 비효율적인 계획경제 속에서 물가는 폭등했다. 1985년 정부는 화폐개혁(구권 10 대 1)을 단행하며 신권 화폐의 가치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민의 저축이 증발하고 인플레이션은 1986년 한때 700%까지 치솟았다. 오늘날 베트남 화폐(동)에 동그라미가 주렁주렁 달리게 된 연원이 바로 이 시기의 초인플레이션이다. 막다른 길에서 베트남은 1986년, 운명을 바꾸는 결단을 내린다.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대 전환하는 개혁·개방, 즉 ‘도이모이(Đổi Mới, 쇄신)’였다.
1986~2000 개방, 그리고 수교
도이모이 이후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했다. 외국인 투자가 밀려들었고, 1990년 이후 연평균 6%대 성장이 시작됐다. 한때 총을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마침내 정상수교한다.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의 통치 방식이다. 베트남은 서기장·국가주석·총리·국회의장이 권력을 나눠 갖는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중국의 1인 지도체제와 달리, 집단지도체제는 특정 개인의 폭주를 견제하고 정책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것을 막아 안정성을 높이는 강점이 있다. 이 정치적 안정성이 장기 투자 환경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2000~2020 제조업 허브, 그리고 코로나
2010년 이후 베트남은 ‘세계의 공장’ 중국을 잇는 새로운 제조 허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멈춰 선 그해, 베트남은 초기 방역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았다. 강력한 추적·격리와 국경 통제로 초기 확산을 억제하며, 위기 속에서도 성장세를 지켜낸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공급망이 흔들리던 그 시기, 베트남은 오히려 글로벌 제조 기지로서의 매력을 키워갔다.
2020~2026 삼성, 그리고 베트남의 부상
현재 한국과 베트남 관계의 상징은 단연 삼성이다. 삼성은 2025년 말 기준 누적 투자액 약 240억 달러(약 32조)를 넘어선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자다. 박닌·타이응우옌 공장을 중심으로 약 8만7천 명을 고용하며, 매출 649억 달러·수출 571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베트남 GDP의 약 13%~18%, 전체 수출의 13~20%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 외국 기업이 한 나라 경제의 8분의 1 이상을 떠받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한때 동남아의 선두였으나 성장 정체에 빠진 태국은 ‘잃어버린 시대의 일본’에 빗대어 표현되는데 반하여,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베트남은 ‘제2의 한국’에 비유되기도한다. 압축 성장의 가파른 곡선을 그리는 베트남의 모습은 분명 한국의 과거를 연상케한다.
60년의 우상향이 질주하는 곳
전쟁에서 출발해 도이모이(1986)와 수교(1992)를 지나 삼성등 한국기업이 베트남 성장을 견인하는 시대(2026)에 이른 이 60년의 우상향 흐름은, 단순히 두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적이 동반자가 되고 폐허가 공장이 되는,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그리고 그 우상향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