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이론 — 베트남은 한국의 어제인가

베트남의 경제와 사회를 살펴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거리를 메운 오토바이의 행렬, 철야작업으로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잘살아 보자’는 열기 — 사뭇 40여년 전 한국의 근로환경과 겹쳐 보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게 되는 이 데자뷔를, 사람들은 흔히 ‘평행이론’이라 부른다.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는 정말 동일한 궤도를 일주하는, 평행한 운명일까?

한국과 베트남의 평행선

먼저 출발점이 닮았다. 두 국가 모두 20세기 중반, 외세와 이념대립으로 충돌하는 전쟁터었다. 그리고 두 국가 모두 하나의 ‘선’으로 갈라졌다. 한국은 38선으로, 베트남은 17도선으로. 북위도 선 하나에 국토와 민족이 두 동강 나 버렸다는 사실부터 섬뜩하게 평행하다.

전쟁이 남긴 상처도 유사했다. 전쟁폐허, 빈곤, 그리고 세계 최빈국이라는 낙인까지. 1950년대와 60년대의 한국과 1970년대와 80년대의 베트남은, 사진의 색만 보정하면 구분이 어려울 만큼 흡사한 모습이다. 하루 세끼 먹을 것이 없었고, 경제를 일으킬 자본이 없었고, 오직 가진 것이라곤 사람과 전쟁의 처참한 상흔 뿐이었다.

시차를 둔 같은 길

두 국가의 유사점은 그 출발점 뿐만이 아니다. 전쟁폐허를 딧고 뚜벅 뚜벅 걸어온 고단한 여정까지 포개진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 국가 주도로 수출과 제조업이 성장하고 도약했다. 한국이 1970~80년대에 섬유와 전자, 그리고 대기업이 선도하며 ‘한강의 기적’을 써내려 갔다면, 베트남은 2000년대 이후 외국인 투자와 제조업을 발판으로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한 세대 또는 반 세대 정도의 시차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한국과 베트남이다. 베트남의 오늘을 보면 한국의 어제가 보이고, 한국의 오늘을 보면 베트남이 도달할 내일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한 세대쯤 앞서 가는 한국은 베트남이 그리는 ‘미래’의 ‘자화상’인 셈이다. 한국경제의 기둥 역할을 해왔던 삼성이 현재 베트남 수출의 주역을 맏아 베트남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상황도 한 세대의 시차를 둔 유사한 시대상으로 비춰진다.

시간의 거울 앞 두 국가

여기서 다루는 한국과 베트남 60년 맥박 시리즈는 사실 처음부터 ‘평행’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1917년 같은 행에 태어나 유사한 운명을 띠고 살다가 유사한 패턴으로 생을 마감한 박정희와 케네디, 프랑스와 미국을 차례로 꺾은 베트남, 그리고 적에서 동반자가 된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역사는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지만, 분명 유사한 음률을 따르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렇게 서로에게 거울의 역할을 해 왔다. 한국인에게 베트남은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회상을 불러오고, 베트남 사람에게 한국은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미래의 ‘내 모습’ 되고 있다. 두 국가가 서로에게 각별한 이유가 사업 파트너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에게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대비시킬수 있는 ‘시간의 거울’ 관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평행선은 서로 만나지 않지만

물론 평행이론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고 이를 믿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평행선이 서로 만나지 않듯, 한국과 베트남 두 국가의 운명이 동일 할 수는 없다. 베트남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세계는 한국이 도약하던 시기와는 다르다. 베트남은 거대한 패권국 중국을 이웃하고 있고, 기후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고 ,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를 대비해야 하고, 고속 성장 뒤에 ‘중진국 함정’의 늪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성공 공식을 베트남이 벤치마킹 한다고 유사한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은 물론 없다.

베트남은 한국의 길을 참고할 수는 있어도, 결국 베트남 자신만의 페이스로 경제 번영을 이끌어 내야한다. 한국인의 베트남에 대한 긍정회로는 현재 진행형이다. 

베트남은 한국의 데자뷔

한국인에게 베트남은 단순한 외국이 아니다. 베트남에 투자하고,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베트남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의 거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예전 모습을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베트남인들의 활기에서 한국인은 젊은 날을 돌아 보고, 그들의 고민에서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시련을 떠올린다.

한국과 베트남 그 60년의 맥박, 적으로 만나 동반자가 되기까지의 긴 이야기는, 결국 두 국가가 시간의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한 편의 평행 서사시다. 그 시간의 거울 속에서 한국인은 베트남의 내일과 함께 우리 자신의 어제를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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